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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복자라 불리는 알렉산드로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사람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 그리고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단지 영토를 크게 확장한 정복자가 아니라 꿈과 이상이 원대한 정복자였고, 그의 정신과 세계관은 부모님과 스승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건설한 대제국은 아버지, 어머니, 스승으로부터 받은 영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렉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를 가리키며 영어로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우리는 일반적으로 스파르타 폴리스, 아테네 폴리스, 테베 폴리스를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진적인 폴리스들은 에게 문명과 가까운 그리스의 남부에 위치했습니다. 반면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북부의 척박한 산지에 위치한 폴리스로 그리스의 폴리스 중 가장 가난한 도시 국가였습니다. 게다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할 때 진입로에 있던 마케도니아는 전쟁의 여파로 거의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런 마케도니아를 강대국으로 만든 사람이 필리포스 2세였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필리포스 2세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형이 먼저 왕이 되었고, 그는 경쟁자인 필리포스 2세를 견제하기 위해 테베에 볼모로 보냈습니다. 필리포스 2세는 테베에서 운명의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 스승은 테베의 장군 에파미논다스였습니다. 에파미논다스는 테베의 명장으로 강대국 스파르타에 맞서 테베를 승리로 이끈 장군이었습니다. 에파미논다스는 볼모 생활을 하던 필리포스 2세에게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정치적인 처세술과 그리스 전체의 정세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필리포스 2세는 볼모로 테베로 가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습득한 필리포스 2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가 만들어졌습니다. 팔랑크스는 창과 방패를 든 다수의 병사들이 밀집한 대형을 말합니다. 팔랑크스의 두 가지 무기는 긴 창을 일컫는 사리사와 방패를 뜻하는 호플론입니다. 다른 모든 그리스의 도시 국가의 팔랑크스는 사리사 길이가 2.4m였는데, 필리포스 2세는 사리사의 길이를 4.2m로 늘렸습니다. 창이 길어지면 무거워지기 때문에 두 손으로 들어야만 해서 대신 방패를 작게 만들어서 목에 걸었습니다. 그 결과 병사들의 이동 반경이 더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리사의 길이가 길어져서 먼 거리의 적을 상대할 수 있으므로 병사들이 더욱 안전해졌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를 처음 적용한 사람이 알렉산드로스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왕인 다리우스 3세와의 이수스 전투에서 필리포스 2세가 만든 팔랑크스를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전략은 팔랑크스의 진영을 유지한 채 적의 본진을 침공하여 페르시아의 수장인 다리우스 3세를 노리고 처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수스 전투는 그리스의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마케도니아와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페르시아의 전투였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로스는 25세의 청년이었습니다. 결국 이수스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는 도망쳤고, 알렉산드로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천재적인 전략과 전술 능력을 물려주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가 그에게 미친 영향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필리포스 2세는 올림피아스를 버리고 20세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떠났으나 필리포스 2세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올림피아스는 민간 신앙인 디오니소스 신앙을 믿었고 뱀을 숭배했습니다. 역사학자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올림피아스는 결혼식 전날 밤 천둥 번개와 폭우가 쏟아지다가 번개가 그녀의 배에 떨어지면서 불길이 솟아나는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번개는 제우스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피아스는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나는 알렉산드로스에게 그가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올림피아스의 그 말은 알렉산드로스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 신탁을 받은 이후로 그가 신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항복하는 것은 신의 아들에게 항복하는 것이라며 상대방의 항복에 명분을 줄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고 마침내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굉장한 자신감으로 전쟁에서 항상 전투의 최전선에 나서서 싸웠습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를 무서워했고 안식처를 찾아서 세상 끝까지 가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끝이 인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국 인도까지 가서 코끼리 부대를 이끌었던 인도의 포로스 왕과 히다스페스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 강 앞에서 대원정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히다스페스 전투가 알렉산드로스의 마지막 전투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정신력과 모험심은 대제국 건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생애

알렉산드로스가 12세에 아주 사나운 야생마를 길들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인 중 누구도 말을 길들이지 못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 야생마가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야생마의 머리를 태양 쪽으로 향하게 하여 말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말이 알렉산드로스의 명마이자 수많은 전투에서 그와 함께 한 부케팔로스입니다. 이 모습을 본 필리포스 2세는 아들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게 해 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역사, 문법, 음악, 기하학, 수사학, 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가 호메로스가 쓴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일리아드를 알려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리아드에 주석까지 달아서 상세히 가르쳤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쟁에 나가면서 항상 일리아드를 가지고 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스승이었습니다. 필리포스 2세가 아들에게 부모로서 가장 잘한 일이 아들에게 최고의 스승을 소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테베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변국에서는 20세에 왕이 된 알렉산드로스를 어린 왕이라고 무시하여 종종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본보기로 테베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라니코스강 전투에서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수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동방 원정을 성공으로 마쳤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이었으며 그리스 폴리스의 작은 세계를 넘어 보편적인 제국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는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하였고, 동과 서가 만나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통합을 이루었습니다.